흑백 요리사를 보면 시즌 1에서 트리플스타가 안성재가 심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아무래도 같은 파인 다이닝을 하시니까..."라든지, 시즌 2에서 안성재가 요리괴물과 손종원 팀의 음식을 먹어보면서 "파인 다이닝이니까 꼼꼼하게..."라는 등의 발언을 한다.
마치, 한식이나 중식처럼, 요리의 카테고리인 것처럼 표현을 한다.
그렇지만 한식 파인 다이닝도 있고 중식 파인 다이닝도 있으니 퀴진과 병행되는 개념은 아닐거고, 비싼 식당이 파인 다이닝인가? 뭐 그런 생각이 들게 되는데,
이 포스팅을 통해서 한 번 필자의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먼저 현 시점 지상 최고의 두뇌인 gemini 3.0 pro한테 파인다이닝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라고 시켜봤다.
"최상의 식재료와 셰프의 독창적인 요리, 그리고 고도로 숙련된 서비스와 공간의 미학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단순한 식사를 넘어 오감을 만족시키는 예술적 경지의 미식 경험을 의미합니다."
라고 한다. 좋은 재료, 독창성이 있는 요리(라는건 독창적인 재료와 쿠킹의 조합을 말하는 거겠지?), 숙련된 서비스 까지는 다 이해가 가는데, 공간의 미학이란 표현과 식사를 넘어 오감을 만족시키는 예술적 경지의 미식 경험이란 두 표현은 쉽게 와닿지가 않는다.
필자가 보기에는 공간의 미학은 정확히 뭘 말하는지 이해도 힘들뿐더러, 파인 다이닝을 구성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아닌 것 같다, 왜냐면 오감을 만족시킨다고 할 때 포함되는 개념인 것 같아서.
또한, 예술적 경지의 미식 경험이란 말은 너무 두루뭉술하고, 개념적으로 바꿔보면 "사유", "사색"이 들어가야 비로소 파인다이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필자가 주장하는 파인 다이닝의 정의는
좋은 재료 추구 & 독창성 추구 & 숙련된 서비스 제공 & 사유할 거리 제공
이렇게 네 개 항목의 교집합으로 구성되는 것 같다.
앞의 세 가지는 이미 Gemini도 알고 있는 것이니까, 네번째 것인 "사유할 거리"에 대해서 추가적으로 이야기를 해 보자면,
안성재 셰프가 항상 "의도"를 중시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파인 다이닝 셰프라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라면, 고객에게 음식을 소재로 사유할 거리를 제공해야만 한다. 하다못해 라면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파를 그냥 송송 썰어서 주는게 아니라 송송도 썰고 구워서도 주고 튀겨서도 넣었다고 쳐보자.
그러면 일단 어느정도 독창성에 해당되는 영역이고, 이 독창성은 곧 사유할 거리로 이어진다.
"왜 라면에 파를 튀겨서 넣지? 이미 기름진 음식에 왜 또 기름진 튀김을 추가하지?"
등의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모든 독창적인 쿠킹은 사유할 거리를 제공하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썰은 파, 구운 파, 튀긴 파, 이른바 삼파라면"이라고 메뉴명에서부터 사유거리를 제공할 수도 있고, 서빙하는 직원이 눈 앞에서 파 세 개를 넣어주는 퍼포먼스를 통해서 사유거리를 제공할 수도 있다. 만약 직원이 고객 앞에 라면을 가져와서 파를 썰어주고, 튀긴 파를 넣어주고, 구운 파도 코 앞에서 냄새를 맡게 한 후에 그릇에 넣어준다면, 그 때부터 고객의 파에 대한 사유가 시작되는 거다.
그런 단서 없이 그냥 파 세 가지를 넣어서 준다면, 고객의 상황에 따라 세 가지 파에 대해 집중하지 못할 수 있고, 심지어 파가 세 종류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사유거리 제공에 실패한 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파인 다이닝이 대부분 공간적 여유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독창적이고 좋은 재료로 신속한 오퍼레이션으로 불편함 없이 제공된다고 하더라도, 일본 라멘집같은 테이블과 의자 같은 구성이라면, 음식의 재료와 쿠킹의 독창성에 대해서 사유할 여유가 생길까?
그러니까, 공간의 미학이라는 제미나이의 대답은, 사실 사유할 거리 제공에 딸려오는 요소 같은 것이다. 라멘집 분위기로도 사유할 거리를 제공할 자신이 있으면, 그렇게 해도 파인 다이닝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사유할 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에서 파인 다이닝과 현대미술이 관련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큰 차이가 있다면 미술과 다르게 음식은 음식을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꽤 그럴듯한 평가를 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32시간 동안 열과 성을 다해 트러플 넣고 대게껍질 넣고 육수 내고 졸이고 별 짓 다 해서 나온 음식도, 누군가한텐 "그냥 돼지국밥이 더 맛있는데? 요 앞에 막회집이 더 맛있는데?"라는 평가가 가능한 것이고, 현대미술에서는 그런 평가를 내리는 사람을 제외하고 시장을 형성할 수도 있는 반면에, 음식은 그럴 수 없다는 점이다.
즉, 구겐하임에 전시된 작품들은 몽마르트에서 초상화 그려주는 작가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지만, 안성재 셰프는 선릉 농민 순대국을 이겨야 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더 재밌는 게 파인 다이닝 아닐까 한다. 너도 나도 의견을 낼 수 있고, 서비스 제공자는 그 의견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파인 다이닝을 가서 음식을 맛보고 평가하고 그것에 대해서 대화하는 것을 취미로 삼는 사람으로서,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취미를 즐길 수 있기를 바라고, 그럴 수 있는 소재를 제공하는 식당들이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파인 다이닝에 대해 정의를 나름대로 내려보고 나름의 소회까지 적어 보았다.
인터넷에선 글을 짧게 써야한다는 압박이 있는데, 이미 너무 긴 것 같아서, 재빨리 마무리해야겠다.
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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